로버트 와이즈(Robert Wise)는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다장르 장인’으로 평가받는 감독입니다. 그는 1940년대 고전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연출을 시작해, 뮤지컬, 공포, SF까지 폭넓은 장르를 섭렵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한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스릴러부터 가족 뮤지컬, SF까지 과감하게 도전한 그의 행보는 오늘날에도 창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처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뿐 아니라,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스타트렉: 더 모션 픽처> 같은 과학철학적 SF 영화, 그리고 초기작 <집 없는 유령>처럼 기괴한 공포물까지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 세계는 넓고 깊습니다. OTT 시대에 다시 조명되는 그의 장르적 도전은 지금 봐도 여전히 신선하며, 본 글에서는 그가 다룬 주요 장르 세 가지인 뮤지컬, 공포, SF를 중심으로 그 미학을 살펴보겠습니다.
뮤지컬: 감정과 화면의 완벽한 조율,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 장르에서 로버트 와이즈의 이름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사운드 오브 뮤직>(1965)입니다. 이 영화는 줄리 앤드류스의 따뜻한 연기와 함께, 감정을 공간과 음악으로 풀어낸 미장센이 돋보입니다. 와이즈는 브로드웨이식 무대감과 할리우드식 카메라 무빙을 결합하여, 단순히 노래하는 장면을 넘어 시청자의 감정까지 따라 움직이게 만듭니다.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같은 음악은 단지 멜로디가 아니라 서사 흐름의 일부로 기능하며, 대사보다 강력한 전달력을 가집니다. 특히 알프스 전경을 활용한 야외 촬영, 인물의 감정선과 맞물린 음악 삽입 타이밍은 편집의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OTT 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젊은 시청자들 또한, 고전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생생한 연출과 감정의 진정성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와이즈는 뮤지컬의 ‘형식’보다 ‘감정’을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며, 뮤지컬을 이야기 중심 장르로 끌어올렸습니다.
공포: 공간의 긴장과 인간 심리를 건드린 <집 없는 유령>
로버트 와이즈는 <집 없는 유령>(The Haunting, 1963)이라는 걸출한 공포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유령이나 괴물의 실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극한의 심리적 공포를 전달하는 연출력으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좁은 복도, 삐걱거리는 바닥, 기묘하게 왜곡된 건축적 구조는 관객에게 압박감과 불편함을 선사하며, 특히 카메라 워킹과 음향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는 오늘날 공포 장르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와이즈는 시각적 자극보다 인간 심리를 이용해 공포를 증폭시키는 연출로 공포영화의 격을 끌어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최근 OTT를 통해 재조명되며, Z세대와 MZ세대에게도 ‘정적인 공포’의 매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장된 점프 스케어 없이도 충분히 무섭고 불쾌할 수 있다는 점은 와이즈 감독이 장르의 본질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공포를 효과가 아닌 ‘경험’으로 이해했고, 그로 인해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심리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SF: 인간과 기술,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로버트 와이즈의 SF 영화 세계는 단순한 상상력을 넘어, 당대 과학기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1971)은 미지의 외계 바이러스와 이를 다루는 과학자들의 고립된 연구과정을 다룬 영화로, 냉전시대 과학불신과 생명윤리 문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SF라는 장르를 기술적 상상력의 놀이터가 아닌, 과학과 인간의 윤리적 갈등을 탐색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어서 <스타트렉: 더 모션 픽처>(1979)에서는 기존 TV 시리즈의 활극적 면모를 넘어서, 철학적 사유와 시각적 장관이 어우러진 서사로 승화시켰습니다. 와이즈는 긴 여백과 우주적 정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미미함과 위대한 탐험의 의미를 동시에 전달하며, '명상적 SF'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깊이 있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OTT에서 이들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액션 중심 SF에 익숙한 흐름 속에서 신선한 ‘정적 사유형 SF’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로버트 와이즈는 단순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감독이 아닙니다. 그는 각 장르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감정과 인간성, 철학적 질문을 세심하게 설계한 연출자입니다. 뮤지컬의 따뜻함, 공포의 긴장감, SF의 사유적 깊이를 모두 품은 그의 필모그래피는 OTT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화 언어로 살아 있습니다. 고전을 넘어 미래를 설계했던 감독, 로버트 와이즈. 그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볼 시간입니다.